3년 만의 반창회

최정규 時雨 승인 2022.05.24 23:51 | 최종 수정 2022.05.25 00:03 의견 5

3년 만의 반창회


해마다 기다리는 몇 가지 모임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고3 반창회다.

2006년 봄에 있었던 졸업 30주년 기념행사 이후로 내동 1년에 한 번씩 가을에 치르다가 2019년부터 어떤 친구의 일모도원(日暮途遠) 이야기에 해가 저물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보자는 취지로 2020년부터는 봄 가을로 두 번씩 모이자고 했었는데 아! 코로나!! 그 못된 친구로 인해 3년이 미뤄졌다가 지난 토요일에 드디어 모임이 이루어졌다.

장소는 남원~

성춘향과 이몽룡 향단이와 방자 그리고 월매의 고장, 가루지기의 주인공 옹녀와 변강쇠의 뜨거운 혼이 살아 숨 쉬는 고장, 한반도 남쪽 백두대간의 시작점 지리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고장, 시래기와 함께 어우러져 환상의 맛을 자랑하는 추어탕의 고장...

서울 인천 경기 대전 전주 군산 광주 사천 거제 등 전국 각지에서 각자의 일을 하던 친구들이 속속 도착했다.

서운한 건 나이지리아에서 사업하는 친구가 참석하기로 했었는데 갑작스런 사정으로 출국하는 바람에 참석 못했다는...


저녁은 남원 최고 한우구이로 후다닥 때우고 바로 옆 광한루원으로 자리 옮겨 춘향과 몽룡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함께 취해본다.

누군가의 한 마디에 한창 무르익던 젊은 시절 사랑에 대한 회상이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야! 춘향이는 무신~

우리한테는 이뿐 년보다 안주고 머시고 잘 주는 월매 같은 년이 최고여!!"

이런 된장~

저 녀석은 인생의 최고 가치가 리비도라고 생각하는 놈이다.

어?

그게 나구나!!!


오천을 가로지르는 춘향교를 건너 숙소인 켄싱턴리조트로 돌아왔다.

얼마 만인데 그냥 잘 수 없지.

한 방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하나씩 각자 방으로 돌아가고 1시 반이 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술자리에 주류 비주류가 있다면 잠자리에는 코파 비코파가 있다.

코파들이 모인 우리 방에서는 먼저 자는 놈이 장땡이다.

나는 5,000cc 터보엔진을 장착한 찐 코파다.

옆에 할리 데이비슨 같은 친구가 씩 웃으며 누웠다.

그래~ 내가 최고의 우정을 발휘하마.

친구가 먼저 잠드는 걸 보고 꿈나라로 향했다.

다른 친구들이 아침에 들려준 후담으로는 할리가 여러 차례 선잠을 깨서 거실을 서성였단다.

작은 우정을 실천하는 것도 참 어렵다.

일부 바쁜 친구들은 새벽에 떠났다.

남은 친구끼리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고 성삼재로 향했다.

노고단까지 왕복 2시간의 산책은 날씨만큼이나 편안하고 따뜻했다.

계속 밀려드는 등산객을 피해 얼른 내려와 달궁계곡의 정자나무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원 출신으로 우리 반창회의 탄생과 지금까지 발전의 거의 모든 것을 맡아 책임지고 있는 친구가 교직에서 얼마 전 은퇴했는데 제자의 집이란다.

젊은 여사장에게 슬쩍 물어봤다.

"저 선생이 해병대 출신인데 남편이 학교 다닐 때 혹시 많이 맞았다고 얘기하지 않던가요?"

"저희 남편이 워낙 조용한 범생이여서요~"

슬쩍 웃으며 넘어간다.

조금 더 수작을 걸어본다.

"저 친구는 범생이를 더 때렸다던데~

교편의 편이 채찍이란 뜻이고 질이 안 좋은 애들은 어차피 때려도 잘 고쳐지지 않는데 범생이들은 체벌을 통해서라도 잘 가르쳐야 나중에 큰 그릇이 돼서 좋지 않은 친구들까지 잘 간수하는 거라고~

댁의 남편이 그런 큰 사람이란 얘기지~!"

시키지 않은 안주가 더 나왔다.

내가 군산까지 운전을 하기로 해서 아랫집 친구한테 맘 놓고 마시라 했더니 옆 테이블에 가서 마시다가 나쁜(?) 친구들의 꾐에 빠졌는지 일을 저질렀다.

남원에 온 김에 목공예 명장 김을생이란 분의 수작업 옻칠 목기잔을 하나씩 집에 두고 술을 따라 마시라고 자기가 사비로 사서 기증을 하겠단다.

친구들의 환호와 함께 작업장으로 고고싱~

친구의 정성에 감복한 쥔장의 배려로 다들 가보 하나씩을 챙겨 갈 수 있었다.

가을 광주 모임에 오늘 받은 잔들을 챙겨와서 함께 마시자는 다짐과 함께...

이제 진짜 헤어질 시간~

운동선수들처럼 일렬로 주욱 서서 한 명씩 한 명씩 헤어짐의 의식을 치렀다.

군산으로 돌아오는 길 얌전하게 운전하는데 옆에서 옹알옹알하던 친구가 문득 조용해지더니 착한 일을 한 어린아이의 죄 없이 맑은 표정으로 시나브로 잠이 든 모양이다.

좋냐?

니가 좋으니 나도 좋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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