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여주는 여자 이야기

소영은 무죄다.

이관석 승인 2022.08.21 23:09 | 최종 수정 2022.08.26 18:38 의견 0

영화는 재미가 우선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의미 있는 영화,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우선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동조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와 함께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그런 영화를 만나면 행복하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가 그렇다.

‘죽여주는 여자’는 여러 논쟁거리를 담고 있다. 노인의 성, 빈곤, 죽을 권리, 독거노인, 혼혈과 입양, 트렌스 젠더, 장애인 등을 이야기할 수 있다. 영화는 노인의 성, 빈곤을 화두로 시작하지만 인간의 존엄성과 죽을 권리를 이야기한다.

존엄사는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많은 논란이 있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효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가족 (부부 및 자녀, 형제 포함)의 어느 일 인이 찬성하면 생명 연장을 중단해달라는 문서를 작성해서 가지고 있다.

영화 속 소영은 중풍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자존심 강하고 단정했던 노인에게 농약을 먹여 죽여준다. 치매가 점점 더 심해져 희망이 없는 노인의 청을 받고 절벽 아래로 밀어준다. 함께 수면제를 나눠 먹고 마지막 가는 길이 쓸쓸해 곁에 있어 달라는 부탁을 들어준다.

정말 소영은 유죄인가? 존엄사 또는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자기 결정권 존중, 의료비 부담 등을 이야기한다. 반대하는 측은 생명의 존엄성과 법적 도덕적 문제를 이야기한다.

‘Me before you’라는 소설(영화)가 있다. 사고로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죽기로 결심한 아들과 부모는 6개월의 냉각기를 갖는다. 그리고 간병인으로 들어온 여자와 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후 예약한 스위스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여고시절 소풍 갔다 성벽에서 떨어져 목 아래를 움직일 수 없게 된 김옥진이란 시인은 50대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누워 지냈다. 그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 몸도 여자라고 달거리를 한다.’ 그의 아픔이 전해졌다.

어머니께서 입원했던 병원에서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며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다. 황당했다. 인맥을 동원하여 서울대 병원으로 어머니를 모셨고 치료를 받고 퇴원하셨다. 하지만 어머니 홀로 하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2년을 더 사신 어머니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난 지금도 2년이 효도였는지 불효였는지 판단이 안 된다.

‘소영은 무죄다!’ 희망이 없는 삶을 계속 이어가라는 것은 또 다른 횡포이자 형벌이다. 소영은 그들을 해방시켜 줬을 뿐 더러 자신은 씻을 수 없는 짐을 짊어졌다. 현실의 소영은 자신의 살인 행위에 대한 변명없이 교도소에 수감되고 삶을 마감한다.

존엄사를 빙자한 살인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엄격한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 자연 속 동물은 체력이 떨어지면 도태된다. 스스로 거동할 수 없고 본인이 원한다면 존중 받아야 한다. 그래서 소영은 무죄다.

[포트립 이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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