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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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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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주 오래된 낡은 편지
김경은
오래된 아주 오래된
낡은 편지를 꺼냈다
항상 그늘이거나 어둠에서
빛을 잃었던 편지
그대 먼저 앞서 간 길에
미로 같던 골목길 문득 따라오고
끊어졌던 길 아닌 것들도 이어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던 청춘
나와 함께 했던 산과 들
강물이 흐르고 흐릿한 추억이
거친 호흡을 하며 달려온다
얼굴 없는 얼굴이 되어서
늘 사랑한다 하며 망설이다가
어둠이 짙은 날 별빛이 내려오면
오래된 옹기그릇의 작은 상처들
낡은 먼지 틈 사이 깨어진 실금들
분명하게 다가오는 아픈 상처들
한동안 눈발이 흩어지고
세찬 겨울바람에 떨며
어느 골목 땅에도 내려앉지 못하고
한없이 그대가 지나간 길을 떠도는
몇 개의 눈이 녹는다
오래된 편지를 접는다
길 떠난 그대의 길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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